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> > > <img src="http://15.165.222.35/evxw9t.jpg" alt="이미지" style="max-width:100%;"><br><br>■ 함흥차사咸興差使 > > ■ 함흥차사(咸興差使) > > 우리가 쓰는 말 중 ‘함흥차사’ 는 ‘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’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. > > 함흥으로 떠나버린 태조 이성계를 모셔오기 위해, 태종이 사신(차사)을 보낼 때마다 태조가 이를 죽여 돌아오지 못했다는 일화에서 생긴 말이다. > > 태조가 함흥으로 떠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? > > 태조 7년 1398년. ‘1차 왕자의 난’ 으로 신덕왕후 강씨 소생인 세자 방석과 방번이 이방원(태종)에 의해 죽임을 당한 데 분개한 테조 이성계는 왕위를 둘째 아들(정종)에게 내주고 상왕(上王)으로 물러났다. 태조는 48세 늦은 나이에 강씨에게서 얻은 막내 방석(세자)을 무척 사랑했는데, 그가 이복형인 이방원에 의해 비참하게 죽자 충격을 받은 것이다. > > 2년 뒤, ‘2차 왕자의 난’ 이 다시 일어나 방원과 친형인 방간 사이에 살육전이 벌어지고, 방간은 방원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되자, 방원을 미워하던 태조의 증오는 더욱 심해졌다. 뒤이어 형인 정종을 내몰고 방원(태종)이 임금으로 즉위하자, 태상왕(太上王)이 된 이성계는 개경을 떠나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렸다. 이는 태조가 이방원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방원에게는 커다란 손실이었다. 태종은 태조를 설득해 서울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인물들을 물색해 함흥으로 보냈는데 이들이 바로 함흥차사이다. > > 이성계는 정말 이들을 모두 죽였을까? > > 태조의 옛 친구인 성석린이 함흥차사를 자청하고 나서서 두 번이나 함흥에 갔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 태종에게 “태상왕(太上王)께서 빨리 돌아오실지 늦게 돌아오실지 아직 모르겠습니다.” 라고 보고했다는 기록이 있다. 이성계는 그를 죽이지 않은 것이다. > > 야사(野史)에는 이성계가 태종이 보낸 차사들을 셀 수 없이 죽였다고 전하지만, 실제 죽은 것으로 전해지는 유일한 인물인 박순도 이성계가 아니라 사실은 반란군인 조사의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. 실록에 의하면 태조에게 보낸 많은 인물들의 이름을 전하는데 그 중 태조에게 죽은 인물은 없다. 더구나 이성계는 함흥에서 돌아와 평양에 머무를 때, “내가 동북면에 있을 때 국왕(태종)이 사람을 보내지 않았고, 맹주에 있을 때도 사람을 보내지 않았으니 감정이 없지 않다.” 고 한 것으로 보아 차사를 보내지 않아 오히려 섭섭해 한 것 같다. > > 이런 기록으로 보면 ‘함흥차사’는 후세에 지어진 이야기가 아닐까? > > ♣ 제공 : KIMSEM의 ‘역사로 놀자’ > > 출처: http://hongdaearea.blogspot.com/2024/03/blog-post_3700.html > 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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