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설현황 글답변
본문 바로가기
로그인
홈
센터소개
인사말씀
미션&비젼
시설현황
조직구성
오시는길
입소안내
장기요양
후원·자원봉사
후원안내/신청
후원현황
커뮤니티
공지사항
새소식
주간식단표
시설현황
facility
센터소개
시설현황
인사말씀
미션&비젼
시설현황
조직구성
오시는길
시설현황 글답변
이름
필수
비밀번호
필수
이메일
홈페이지
옵션
HTML
제목
필수
내용
필수
웹에디터 시작
> > > <img src="http://15.165.222.35/zbmpvk.jpg" alt="이미지" style="max-width:100%;"><br><br>■ 정희왕후 윤씨 2편 > > ■ 정희왕후 윤씨 2편 > > 아들과 어머니가 연달아 죽자 윤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. 게다가 세조의 피부병도 좀처럼 낫지 않았다. 궁궐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몰아내기 위해 윤씨는 사정전에서 효도잔치를 열기도 하고, 세자의 묘 근처에 정인사를 짓고 불공을 드리기도 했다. 그러나 어린 조카를 죽이고 안평대군 등 시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내내 윤씨를 괴롭혔다. > > 윤씨가 세조의 유일한 후궁인 근빈 박씨를 박해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도, 박씨가 사육신 중 한사람인 박팽년의 누이였기 때문이었다. 근빈 박씨는 남동생이 세조에 의해 원혼이 되었으나 끝까지 세조를 섬겼고, 슬하에 덕원군과 창원군을 두었다. > > 1468년 9월 세조가 피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, 세자 광(둘째아들)이 19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. 예종이다. 정희왕후가 예종 때부터 섭정(攝政)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, 이는 사실과 다르다. 즉위할 당시 예종은 섭정이 필요한 나이가 아닌데다가, 8살 때 세자로 책봉된 후 국왕 수업을 충분히 받았기에 굳이 수렴청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. 예종은 신하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원만한 인물로 알려졌으나, 재위 1년 3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남으로써 별다른 치적을 남기지는 못했다. 그만큼 조선시대의 왕들 중에서 우리에게 존재감이 거의 없다. > > 예종은 두 명의 아내와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다. 첫 왕비 장순왕후 한씨는 당대의 실권자 한명회의 딸로 16살이 되던 해에 세자인 예종과 혼인하여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. 그러나 이듬해 첫아들 인성대군을 낳은 후 곧 세상을 떠났고, 인성대군 역시 어린 나이에 죽고 말았다. > > 첫 부인 한씨가 죽은 후 두 번째로 맞이한 아내가 안순왕후 한씨다. 한씨는 우의정 한백륜의 딸인데, 처음부터 정비(正妃)로 간택된 것이 아니라 예종이 세자일 때 맞이한 후궁이었다. 새로 왕비가 된 한씨는 예종과의 사이에 제안군과 현숙공주를 두었지만, 예종의 요절(夭折)로 25세의 나이로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다. > > 예종 다음의 왕위는 마땅히 예종의 둘째부인 한씨가 낳은 제안군에게 돌아가야 하지만, 대비 윤씨는 당시 4살인 제안군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반대했다. 그리고는 죽은 의경세자(세조의 큰아들)의 맏아들 월산군은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제치고, 13살이 된 자산군(잘살군:성종)에게 왕위를 넘겨주었다. > > - 3편에 계속 > > " > ♣ 제공 : KIMSEM의 역사로 놀자 > " > > 출처: http://hongdaearea.blogspot.com/2024/03/2_868.html > >
웹 에디터 끝
링크 #1
링크 #2
파일 #1
파일 #2
자동등록방지
숫자음성듣기
새로고침
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.
취소