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> > > <img src="http://15.165.222.35/o0ndc7.jpg" alt="이미지" style="max-width:100%;"><br><br>■ 귀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2편 > > ■ 귀성군 이준과 남이장군 2편 > > 남이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영의정을 지낸 남재의 증손자이며, 태종의 외손자로(어머니가 태종의 4녀:정선공주) 태어났다. 남이는 1457년(세조3년)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. 남이는 평소 강직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품을 지녔고 무예도 뛰어났다. 남이는 이시애의 난(함경도 지방의 차별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난)이 일어났을 때 귀성군 이준과 함께 대장군으로 출전하여 뛰어난 무공을 발휘하고 출세 길에 올랐다. 이어서 남이는 여진족 정벌에도 참여하여 일약 영웅으로 부각되었다. > > 세조는 이런 남이를 귀성군의 뒤를 잇는 병조판서에 제수했다. 나이는 귀성군과 같은 스물여덟이었다. 한명회를 비롯한 훈신들은 외척을 병조판서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며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세조는 강행했다. 그만큼 남이를 믿고 총애했다. 그런데 남이는 귀성군 이준처럼 자신을 감출 줄 몰랐다. 남이는 자신의 야망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. 남이가 백두산에 올라 썼다는 시를 보면 남이의 호기(豪氣)와 기개(氣槪)를 짐작할 수 있다. > > 『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라 > >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안하게 못 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』 > > 하지만 이 시(詩)는 나중에 남이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. 젊은 종친세력의 등장을 경계하고 있던 한명회와 신숙주 등 훈구대신들에게 드러내놓고 호탕한 기개를 뽐내는 남이는 좋은 명분을 안겨주었고, 귀성군과 남이를 시기 질투했던 예종의 눈에도 좋게 보일 리 없었다. 예종은 즉위하자마자, ‘외척은 군권을 가져서는 안된다’ 는 훈신들의 주장에 따라 남이를 병조 판서에서 겸사복장(정예 왕실 친위대인 겸사복의 지휘관)으로 좌천시킨다. > > 이때 쯤 조선의 최대 간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유자광이란 인물이 등장한다. 무예가 출중했던 유자광은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, 세조에게 자진 출병하겠다는 서한을 보내 세조의 눈에 든다. 그리고 이시애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워 서얼출신인데도 파격적으로 등용되었다. 그러나 유자광의 입장에서는 서얼출신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. 특히 나이가 비슷한 남이의 출세와 비교해 보면 더욱 그랬다. 그래서 불만이 쌓여있었다. > > - 3편에 계속 > > " > ♣ 제공 : KIMSEM이 역사로 놀자 > " > > 출처: http://hongdaearea.blogspot.com/2024/04/2_1.html > 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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