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설현황 글답변
본문 바로가기
메뉴열기
메뉴
닫기
센터소개
하위분류
인사말씀
미션&비젼
시설현황
조직구성
오시는길
입소안내
하위분류
장기요양
후원·자원봉사
하위분류
후원안내/신청
후원현황
커뮤니티
하위분류
공지사항
새소식
주간식단표
사이트 내 전체검색
검색
사용자메뉴
메뉴
닫기
1:1문의
FAQ
접속자
49
새글
시설현황 글답변
시설현황 글답변
이름
필수
비밀번호
필수
이메일
홈페이지
옵션
html
제목
필수
내용
필수
웹에디터 시작
> > > <img src="http://15.165.222.35/5gipnd.jpg" alt="이미지" style="max-width:100%;"><br><br>■ 예종의 여인들 1편 > > ■ 예종의 여인들 1편 > > 조선의 제8대 임금 예종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차남으로 왕자시절의 군호(君號)는 해양대군이었다. 단종을 제외하면 조선 왕조 27명의 역대 임금 중 가장 단명한 불운한 왕이기도 하다. 원래 그는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다. 맏형인 의경세자와의 나이차가 워낙 많은데다가(12살) 의경세자는 여러모로 유력한 후계자였기 때문이었다. 그러나 의경세자가 만 19세의 나이로 급사해버렸다. 단종을 죽인 것에 대한 단종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의 저주란 야사도 있지만, 실제로는 의경세자가 단종보다 먼저 죽었다. > > " > 어쨌든 이로써 해양대군은 세자가 되었고, 세조가 죽기 하루 전에 선위를 받아 임금이 되었다. 세자 시절엔 얌전하고 똑똑해서 신하들이 문종‘ 같은 군주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. 하지만 몸이 안 좋았고 성년이 되기 전인 19세에 즉위했기 때문에 어머니인 정희왕후(세조부인)가 예종과 동석하여 수렴청정을 했다고 한다. 하지만, 당시 예종의 나이는 거의 성년에 가까웠기 때문에 수렴청정은 곧 거두어졌다. 실제적인 조선 최초의 수렴청정은 그 다음 성종 때 이루어졌다. > ", > > 1461년 세자이던 예종은 11세의 나이로 16세의 장순왕후(章順王后·1445~1461년) 한씨를 세자빈으로 맞이했다. 장순왕후 한씨는 유명한 한명회의 셋째 딸이다. 권력의 단맛을 본 한명회가 세조의 둘째 아들인 해양대군에게 셋째 딸을 시집보낸 것이다. 혼인한 그 다음해에 세자빈은 회임(懷妊)하여 아들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한달만에 산후병으로 사망하였고, 인성대군 또한 얼마 살지 못하고 3세의 나이에 풍질(風疾:신경의 고장으로 생기는 병의 총칭)로 죽었다. 인성대군이 태어난 해가 1461년이니 예종의 나이 12세 때 이미 아버지가 된 것이다.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아들을 일찍 본 임금이기도 하다. 장순왕후 한씨는 남편이 왕이 되기도 전인 꽃다운 나이 열아홉에 죽었으므로, 남편이 왕이 되고 나서 왕후로 추존되었다. > > 한씨가 죽자 세자빈 자리가 공석(空席)이 되었다. 왕실에서는 한백륜의 딸을 세자궁에 들이고 종5품 후궁인 소훈(昭訓)에 오르게 했으니, 이 인물이 바로 훗날 예종의 비가 되는 안순왕후(安順王后·1445~1499년) 한씨이다. 세자빈으로 바로 선발하지 않고, 우선 후궁으로 들인 것은 아버지 문종시절 세자빈이 폐출된 후 후궁 출신인 승휘 권씨를 승격시켜 세자빈으로 삼은 관행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. 세자시절 예종에게는 이미 숙의 최씨와 이씨가 있었는데도, 한백륜의 딸인 소훈 한씨가 세자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의 행실이 단정함은 물론이고, 아들 제안대군(齊安大君)을 낳은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. > > - 2편에 계속 > > " > ♣ 제공 : KIMSEM의 역사로 놀자 > " > > 출처: http://hongdaearea.blogspot.com/2024/04/1_34.html > >
웹 에디터 끝
링크 #1
링크 #2
파일 #1
파일 #2
자동등록방지
자동등록방지
숫자음성듣기
새로고침
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.
취소
충청북도 옥천군 군서면 장령산로 485
대표전화 :
043-733-1479
팩스 : 043-731-8535
Copyright © All rights reserved.
상단으로
PC 버전으로 보기