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> > > <img src="http://15.165.222.35/eq5i5a.jpg" alt="이미지" style="max-width:100%;"><br><br>■ 왕이 된 남자, 광해 4/4 > > ■ 왕이 된 남자, 광해 4/4 > > 영창대군을 옹립하려는 세력으로는 인목대비와 그 아비 김제남 등의 일파가 있었다. 1613년 서양갑을 중심으로 한 서자들의 옥사가 있었다. 이들은 영창대군을 추대하며 반역을 도모했는데 “참 용은 일어나지 않았는데(眞龍未起, 진룡은 영창대군을 뜻함) 거짓 여우가 먼저 울어댄다(假狐先鳴, 가호는 광해군을 뜻함)”라는 기치를 내걸었다. > > 이에 영창대군은 강화도에 위리안치(圍籬安置, 죄인이 사는 집에 가시 울타리를 치고 그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조치)되었고,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 김제남 등이 그 주모자로 지목되어 처형당했다. > > 이듬해에는 강화부사 정항의 자의로 영창대군이 증살(蒸殺, 방 안에 가두고 장작불을 지펴 열기에 질식해 죽게 한 것)되었다. 이런 일을 겪게 되자 인목대비(영창대군의 생모)는 젊은 나이이지만 궁중의 어른으로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. 그녀는 궁중에서 기회만 있으면 눈물을 흘리며 불평의 말을 늘어놓았다. > > 광해군을 원망하고 헐뜯는 인목대비의 행동거지는 이해할 만하고,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. 권신들은 인목대비의 일을 물고 늘어졌지만, 광해군은 이 문제만큼은 쉽사리 동의하지 않았다. 광해군은 5년 이상을 끌다가 끝내 인목대비에게서 ‘대비’라는 존호를 깎고 서궁에 유폐시키는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. > > 이때에 제기된 것이 전은론(全恩論)이다. 부모에게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형벌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정인홍의 주장이었고, 이원익 · 이항복 등 원로 신하들도 폐모(廢母)만은 안 된다고 극구 만류했지만, 이이첨과 허균, 개시 등의 주장으로 폐모가 단행되고 말았다. > > 그러나 ‘효’를 인간의 기본덕목으로 삼는 유교 이념의 사회, 성리학 국가 조선에서, 비록 생모는 아니었지만 폐모(廢母)의 조치를 내린 것은 광해군의 치명적인 실수였고 큰 잘못이라 할 수 있다. 결국, 이 ‘폐모살제’ 는 서인에 의한 인조반정의 직접적 명분이 되었고 광해군과 대북정권이 몰락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. > > ♣ 제공 : KIMSEM과 함께 역사 다시보기 > > 출처: http://hongdaearea.blogspot.com/2024/04/44.html > >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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